청소년가출예방운동특위

제4회 청소년 가출예방관련 체험수기 수상작(은상)

관리자 0 638 2020.03.06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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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돌이 오가는 길, 수평선

                                                                                                                      박      진      영
                                                                                                 대전외국어고등학교 1학년 5반
        
        ‘날아가리라. 저 멀리 수평선 사이로.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아무도 찾지 않을 저 끝 수평선 사이로 나 날아가리라.’ 어떤 곳으로도 분류되지 않는 하늘과 바다 그 사이, 수평선으로 날아가 살겠다는 내용의 이 시는 매번 가출을 결심할 때마다 읽고 또 읽었던 나의 시이다. 중학생이 되고 쓴 이 시는 그 때의 정말 오갈 데 없는 내 마음과 처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았는데 어쩌면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 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집단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그 사이 조그만 틈새에 숨어서 무서움에 나가지는 못하고 그 사이에서 몸부림을 치는 건 아닐까? 어느 집단에도 속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 수평선 사이에 숨어 있는 건 아닐까?
        청소년기, 특히 사춘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세상에 대한 반란이다. 어릴 때는 부모님 말씀, 선생님 말씀을 잘 들으면서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살았는데 이제 머리가 좀 크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생기기 시작하자 모든 게 다시 새롭게 보인다. 도대체 세상이 왜 이 모양인지 그냥 가만히 있다가도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울컥 치밀고, 그럴 때마다 다 때려 부수고 싶다. 반항을 하고, 과격한 행동을 하고, 사고를 치고, 신경질을 내고, 혼자 어두운 곳에 있고. 이렇게 화를 내고 충동적인 행동이 사실은 자기를 이해해달라는 필사적인 몸부림이기도 하다. 가장 과격하지만 가장 여린 때가 바로 사춘기가 아닌가? 이제 막 새로운 곳에 눈을 떴을 때, 상상하던 것과는 다른 것이 펼쳐져 있을 때 그게 너무도 두려워서 다가오는 것을 막으려는 그 눈물 나는 몸부림을 어른들은 거의 알아보지 못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그런 세상에 대한 상상이 매우 컸다. 내가 꿈꾸던 건 인간 사이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세상이었다. 그저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애틋한 사이가 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내 눈에 보인 세상은 헐레벌떡 스케줄에 쫓겨 표정이 사라진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난 나 역시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매일같이 내가 꿈꾸던 세상을 주위 사람들에게 요구했다. 특히 나와 정반대인 엄마에게 따뜻한 말, 격려와 사랑이, 좋은 옷과 맛있는 밥보다 나에겐 더 중요하다고 말했고, 그렇게 해주기를 요구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그렇게 해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나가려고 그래? 네가 생각하는 건 동화책에나 나오는 얘기야. 이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난 그렇게 감정 없는 로봇이 되어서 집을 하숙집처럼 잠만 자는 그런 곳으로 전락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고, 설령 모두가 그렇다 해도 나만은 예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일을 용납할 수 없는 세상의 일방적인 통보에 대해 울면서 억울함을 호소했고, 방방 뛰면서 어찌할 수 없는 답답한 가슴을 쥐어짰다.
        그러다 지치면 난 종종 내 마음속에 있는 수많은 친구들과 대화를 했다. 그 순간만큼은 조인성도 내 친구였고, 장동건도 내 친구였고, 소설 속 주인공과 드라마 속 슬픈 운명의 주인공들 모두가 내 친구였다. 난 내 상황에 맞는 사람에게 넋두리를 하듯 그러나 정말 내 옆에 있는 듯이 하소연을 했다. 그리고 곧 위로가 되었다. 누가 보면 ‘저게 미쳤나?’ 하겠지만 정말 내가 말을 하면서 내 감정이 정리가 되고, 나중에는 내 마음을 깊이 앎과 동시에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럴 수도 있구나!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이성을 잃고 미친 듯이 날뛸 때는 그저 내 감정에 도취해 무조건 내가 옳다고만 생각했다. 어른들이 이해하지 않는 거고 결국엔 그래서 우리도 망가지게 되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험한 세상이라는 것을. 초등학교, 중학교 때와는 달리 이제는 은근한 차별과 무시, 대하는 태도의 차이를 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모두를 감싸 안았던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선별을 해서 세상에 내보내는 것 같았다. 이제야 엄마와 주위사람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른들이 우리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른들을 이해해야 하는 거였다. 어른들도 어릴 때가 있었고 내가 겪은 고통을 같이 겪었기에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았던 것이다. 같이 감정에 휘말려들기보다는 더 이성적이고 냉철하게 우리를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구출해 내야 한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고등학교라는, 아직은 학교라는 울타리에 있는데도 세상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데 사회에 나가서는 얼마나 더할까 라는 생각이 드니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난 좋은 대우를 받고 자라서 당연히 세상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이기적이었다. 세상이 날 이해해야 한다고, 나 하나를 위해 세상이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직 그래왔고, 세상은 나에게 만만해 보였으니까. 점점 알아갈 수록 무섭고 험한 세상이라는 걸 알지만 우리는 그런 세상을 헤쳐 나가기 위해 ‘사춘기’라는 걸 겪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이런 과정 없이 바로 세상에 내던져진다면 우리 중 두 다리로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2중, 3중의 보호막 속에서 자라던 우리가 생각하던 세상과 진짜 현실이 천지차이니까 그걸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게 아닐까? 처음 나에게 그런 시간이 주어졌을 때, 너무 어색하고 이상해서 무조건 싫다고 떼를 쓰고, 보호막 속에 머물려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점차 보호막이 하나 둘씩 걷히면서 드러나는 현실을 보고 경악해 또 날뛰다 결국엔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나름대로의 방법들을 찾아낸다. 인간이 이렇게 견뎌내고 적응할 수 있다는 걸 알아서 신은 과감히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준지도 모른다. ‘신은 인간이 견딜 수 있을 만큼만의 시련을 준다.’고 하지 않았는가? 시련을 거듭하면서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고 부딪치고 깎이면서 이 세상을 원만히 살아갈 수 있도록 나를 만든다.
        세상엔 나 혼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까 우리는 다듬을 시간을 가져야 한다. 각자가 가진 모난 부분을 불어 닥치는 거친 바람과 밀려오는 세찬 파도에 둥글게 다듬어 세상을 굴러감에 있어서 어디든지 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그 바람과 파도에 몸을 잘못 맡겨 오히려 날카로운 면을 가지게 되면 결국 온 몸이 산산 조각 날지도 모른다. 내가 찌른 둥근 돌이 깨져 날카로워지고 또 그 돌이 다른 둥근 돌을 깨뜨리고, 그러다가 결국엔 내가 찌른 돌들에게 치여 부셔질 것이다. 이런 인고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나는 몸과 마음이 모두 파탄이 날지도 모른다.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헤매다 소리도 없이 파도의 알갱이가 되어버릴 지도 모른다. 몸을 깎아내는 고통을 통해서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고, 한 없이 약하기만 한 마음을 강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젊음의 뜨거움이다. 그 열정은 마음속에는 무한한 사랑을 담고 있고 그 감정을 감싸는 마음은 강하게 만들어 어떠한 유혹과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게 해 줄 것이다.
        오늘도 수많은 둥근 돌이 굴러가고 있다. 부지런히 길을 만들어서 부디 뒤에 오는 돌은 다른 길로 빠지지 않도록 깊이깊이 길을 내어 모난 돌이 한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 둥근 돌들은 열정과 함께 소망을 안고 힘차게 굴러간다. 우리에게는 꿈이 있다. 그 꿈을 위해 우리는 이 고독하고도 아름다운 과정들을 이겨내지 않았는가! 난 믿는다. 중간에 샛길로 새지 않고 굴러서 각자가 원하는 곳에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곳에 자리 잡을 그 빛나는 둥근 돌들이 될 거라고! 매일매일 그 깊이를 더할 그 길이 미래엔 구름을 뚫고 대서양을 건너 온 지구에 무한한 갈래로 퍼져 자신이 안고 있는 뜨거운 꿈을 세상에 펼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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