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한 시위문화 조성운동

숭실대 법대 강경근 교수 토론문

관리자 0 574 2020.03.0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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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문] 폭력시위문화의 문제점과 법적 대응

姜 京 根(숭실대 법과대학 교수․ 헌법학)

Ⅰ. 폭력시위문화의 한국적 특성과 현실

집회․시위는 정치적 의사표현이나 집단민원제기 등 당해 주체의 힘없는 개인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집단적 의사표시를 가능하게 한다는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회집단이나 공권력에 직접 부딪칠 가능성을 항상 그 전제로 한다. 즉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와 질서유지의무가 충돌하는 대표적인 영역이다.
조남홍 전 경총 상근부회장님과 이휴상 연구원 이사장님 두 분 발제자께서 경영과 노동이라는 각기 다른 관점에서 명확하고 다양하게 지적하여 그 해법을 주신 바와 같이 집단 이익의 추구를 죽기 살기 식으로 하는 등 자제력과 자생력을 미처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의 집회․시위는 다른 사회집단이 가져야 할 몫을 뺏는다든지 국가 공권력의 희생을 담보로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수단으로 왜곡되곤 하였다.
집회․시위가 지니는 한국적 현상은 그것이 정치적 의사결정권의 행사 과정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왔다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사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정치권력과 이에 대한 저항이 충돌하여 긴장을 보여주는 최전선이었다. 해방 후 집회 및 시위는 좌우익의 충돌로부터 시작하였으며, 1960년의 4·19혁명은 학생시위에 의한 것이었고 이는 사실상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하여 직선제 개헌 등 일련의 민주화조치를 약속한 6·29선언을 이끌어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 시위와 강제 진압의 악순환이라는 집회․시위의 남용과 오용은 큰 문제점을 드러내 왔다.
공권력은 엄격한 시위 조건의 설정과 금지로 시위의 조기진압에 주력하였으나 이는 죽봉, 쇠파이프, 투석, 화염병 등 폭력시위에 무력화되곤 하였다. 사실 공권력을 집행하는 실체는 방금 전만 해도 대학생이던 학생들이 군입대 등의 사유로 그 자리를 바꾸어 전경의 자리에 서 있는 아마추어들이지만 폭력시위의 선두에 서 있는 전위대들 상당수는 이쪽에서 잔뼈가 굵어 가히 그것으로 생활을 한다고도 볼 수 있는 프로들이니 상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도로나 공공건물 등에서의 점거, 철야농성, 단식 등의 격렬한 방법은 이들의 노하우 정도라고도 할 수 있었다.
아마추어 공권력과 프로 시위대 전위의 대결의 극치는 정치적 목적의 집회 및 시위와 함께 노동자, 농민, 교사 등이 주축이 된 각 부문 운동단체들이 그 요구와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집회 등에서 특히 현저하였으며, 이는 1993년 이른바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합법적 의견표명의 길이 열린 이후에도 줄어들지 않았고 폭력적 경향은 점점 더 살인적인 것이 되었다(대한변호사협회, 「인권보고서」1997년도 제12집 87면 이하 참조).

Ⅱ. 폭력시위문화에 대응하는 법치주의의 실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관련 판례에서 "시위의 참가인원이 40여 명에 불과하고, 시위의 장소가 하천부지로서 교통소통이나 일반인의 생활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 곳이며, 또한 시위 당시의 구호나 노래의 내용 등에 과격한 면이 보이지 않고 달리 다중의 위력을 통한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던 점에 비추어, 집시법 제5조 제1항 제2호 소정의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시위에 해당하진 아니한다."고 한 것은(대법원 1991.11.26. 91도2440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공1992, 372]) 옛 이야기라 할 만큼 최근의 집회 시위는 일반적으로 동원된 인원이 수백 명 이상의 다수이고 그 수단이나 방법에 있어서 미리 준비하여 소지하고 있던 돌과 화염병을 던지고 쇠파이프와 각목을 휘두르며 구호를 외치면서 행진하는 등 비평화적 방법을 사용하는 외에, 파출소를 습격하여 화염병을 던지고 부근에 있던 전경들을 감금하는 등으로 집시법 제5조 제1항 제2호에서 규정한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시위에 해당함은 물론 형법상의 소요 행위 및 살상 등 범죄행위에 다름 아니다.
작년의 촛불시위나 올해의 평택 쌍용차 점거 등은 그보다 훨씬 전인 1997년 5월 한총련의 화염병 시위나 2003년 2월 민노총 소속 노동자와 한총련 소속 학생 등 2만여 명의 시위대가 쇠파이프, 죽봉, 화염병 등으로 일대 도로를 불바다로 만들고 경찰을 향해만여속 볼트․너트를 새총으로 쏘거나 보도블록을 깨 던지기도 한 것이라든지, 2005년 11월 15일 서울 여의도 농민집회에서 똑같은 사태로 인한 농민의 사망과 전·의경 218명의 부상 등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라 하겠다.
집시법 제5조를 정직하게 적용한다면 한국 사회에서 주목을 받을만한 시위치고 금지 대상이 아닌 것이 없을 만큼 시위문화는 불법의 양태로 행하여지는 것이 다반사였다. 국제 사회에서도 이제는 고질임을 알 수 있다. 2005년 12월 17일 홍콩에서 개최된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를 저지하기 위한 원정시위대 파견을 했을 정도이니 이루 말할 수 없이 정신적으로는 무례하고 경제적으로는 건방진 일이었다.
당시, 시위로 추락한 한국의 공권력의 무게와 위상을 다시 살려야 할 때라는 생각을 일반 시민들의 공통된 정서로 형성될 만큼 홍콩의 사법당국이 공권력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느냐를 잘 부각시켜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위 진압과정에서 농민 2명이 사망한 사건으로 대통령과 경찰청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이어 청장을 사임시켰다. 우리의 공권력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아직도 이성적이지 아니하고 감성의 단게에 머물러 있다.
헌법재판소가 1992.1.28. 89헌가8 국가보안법 제7조 등에 관한 헌법소원 합헌결정[헌재판례집 제4권]에서 말한 바와 같이, 민주체제 전복을 시도하는 집회·시위나 공공의 질서에 관한 법익침해의 명백한 위험이 있는 집회·시위까지 집회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하는 것이 헌법이 아닌 것이며, 대중적 집회에는 뜻밖의 자극에 의하여 군중의 흥분을 야기 시켜 불특정 다수인의 생명·신체·재산 등에 위해를 줄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이를 막자 하는데도 위 조문의 취의(趣意)가 있는 만큼, 폭력시위에의 대응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이런 사정을 잘 헤아려야 할 것이라는 점 등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다.
현행 집시법은 신사들의 모임과 항의의 장으로서 기능하도록 하고 시위 전문 꾼들의 폭력, 소요, 살상적 집회 시위에는 특히 공권력의 면책 가능성과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는 이른바 ‘공공질서법’ 제정으로 정해진 법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평화적인 시위는 적극 보장하고 보호하되 법 테두리 밖의 과격·폭력행위에 대해서는 엄중 대처한다는 취지를 관철시키는 것이다.

공공질서법 제정은 무엇보다 시위진압에 나서는 전·의경의 진압복에 명찰을 달도록 하겠다는 식의 안하무인적 태도를 넘어선 양질의 시민들과 함께 가는 것이어야 한다. 공권력은 정부의 권력이지 전경 개개인의 권력이 아니다. 범죄 예방을 위하여 거리를 활보하는 시민들의 가슴에 명찰을 달자는 것과 같은 발상이다. 후자가 인권 침해라면 전자는 공권력 부정인 것이다.
문제는 정부다. 소요 행위 내지 폭도에 준하는 집단의 점거, 시위 등에 대응하는 정부가 법치의 원칙을 세워 이를 공권력으로 집행할 수 있는 정직한 마음과 법밖에 모르는 단순 무식함을 어느 때인가는 지속적으로 보여줄 때이다. 법과 원칙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는 당연한 법치의 원칙을 강조하는 대통령의 말만으로는 노동운동과 시위문화의 방향 전환을 가져오기에는 역부족이다.
공권력의 실종이야말로 시위대와 공권력간의 충돌을 가져오게 하거나 각기 서로 다른 시위대간의 충돌을 가져 오게 하여 결국은 시위가 폭력화 하는 데 일조하는 주 된 원인이 된다. 전투적 시위를 현실적으로 막고 또 막아야 하는 전, 의경의 공권력 행사에 대하여 이를 시위대의 폭력과 같은 차원에서 대비하지 말아야 공권력의 부재를 조장하여 시위대와 공권력간의 충돌이나 시위대간의 충돌을 막을 수 있다.
시위 자체는 헌법이 보장하는 의사 표현의 방법이다. 하지만 그것이 폭력 시위화 한다든지 타인에게 현저한 위력을 유발한다든지 하는 등의 경우에 이를 초기부터 적절히 규제할 수 있는 대응 수단을 매뉴얼화하여 이를 비단 시위 진압자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시위자들 그리고 일반 국민에게 공개하여 우리 모두의교범으로 만들어야 한다.
죽봉, 쇠몽둥이, 쇠창 등과 같은 흉기가 난무하는 전근대적 시위 행태를 지양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사회적 여론 형성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평화로운 시위문화 정착을 위한 집시법은 시위상황 진행단계에 따른 대응조치를 매뉴얼 화 할 때 그 규범력이 살아나면서 집회·시위 이해당사자의 입장 청취와 설득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Ⅲ. 법치 시위문화 확립을 위한 자기책임 원칙의 관철

한국의 법치는 87년 헌정 체제 이후 민주화의 비등과는 반대로 기나긴 하향 곡선을 그려 왔다. 노태우 정부는 ‘물정부’라 불릴 만큼 법치 하향의 시발점을 찍었고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그 최저점을 향하여 치달았다. 현재의 이명박 정부가 법과 질서를 국정의 기본으로 삼겠다 해서인지 한국에서의 법치주의 지수는 상승할 것이라는 예상을 가져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의 쇠고기 촛불시위, 올해의 용산사고는 정권 교체를 변곡점으로 하여 우리의 법치가 상향의 곡선을 그릴 것인지 아니면 더욱 더 하향할 것인지를 분명치 않게 하고 있다.
법질서라는 측면에서 본 한국 사회의 법치와 법치국가적 수준이 타락한 것은 민사책임에 비하여 느슨한 형사책임에 대한 인식에 있다. 의외로 우리 사회는 범죄에 대한 형벌의 인식에 있어서 자기책임이 아닌 타인 책임 내지 사회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법학을 연구하는 집단이나 법집행자들의 일부에서는 온정주의의 함정에 빠졌다는 지적을 받을 정도로 타인 책임론을 인권이라는 가치에 즉응시키고 있는 데, 이는 결과적으로 범죄를 발생케 한 형사피의자나 형사피고인들의 죄책감을 마비케 하면서 그 건너편의 범죄피해자의 인권은 어디서도 위로를 받지 못하는 법치주의의 전도현상이 벌어진지 이미 오래다.
이제 범죄에 대한 형벌 역시 범죄자 자신의 개인 책임임을 분명히 묻는 일을 그 시작으로 삼아, 우리 사회가 빠져 있는 오류 즉 형벌 법규나 행정법규 위배자 등의 범죄자나 범법자들에 대한 온정주의 내지 처벌 회피주의를 인권 보호로 채색하는 오류로부터 벗어나도록 하여야 한다. 범죄자에 대한 인권의 보호는 그에 대한 정당한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의를 실현하는 일에 있는 것이지 그가 자신이 지어야 할 책임의 무게를 줄여 주는 것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범죄자에 대하여 그 죄의 무게를 덜어 주기 위하여 우리 헌법이 유일하게 명문으로 둔 것이 제13조 제3항이다.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는 규정이 그것인 바, 이 규정은 문자만 읽으면 연좌제를 금지하는 내용이겠지만 실질적인 의미로는 근대입헌주의헌법과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인정되는 책임과 형벌의 기본원칙을 정한 것이다. 즉 한 사회에서의 행위와 책임의 관계는 그것이 민사건 형사건 그 책임의 귀속의 관계를 자기책임 내지 개인책임으로 하겠다는 대전제를 확인한 규정이다.
한국 사회에 법과 질서의 법치 수준이 유지될 수 있으려면 이런 자기책임을 관철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문제는 사법질서에 있어서는 민사나 상사 관계의 주체들은 이런 자기책임을 상당한 수준의 국제적 레벨로 지켜 나가고 있는 것에 비하여 국가와 개인간의 관계나 형사책임의 관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용산사고에 대한 형사책임, 국회난투사건 관련 의원에 대한 형사 및 국회법상의 징계 등의 책임, 국회의원에 대한 백주 폭행 관련자의 형사책임 등이 바로 그 행위를 한 사람을 엄정하게 벌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지 못한다면 한국 사회의 법치는 공동체의 통합의 기초로서 작동하기 어렵게 되면서 불법 시위, 시위 현장에서의 공권력은 계속하여 여지없이 무너질 것이다.
공권력과 형벌의 책임 영역에 있어서도 시장의 원칙 즉 자기책임과 과실책임 등 자유주의의 가치가 관철되어야 한다. 타인책임과 무과실책임의 증폭은 사회를 무규범의 함정에 빠뜨린다. 그리고 그런 법의식의 중심에는 한 사회가 자생적으로 형성한 자유의 원칙 즉 책임과 비용의 배분관계가 ‘각자에게 그의 것’을 주고받는다는 점이 온존해 있어야 한다. 그런 법의식에 입각한 법과 제도 그리고 질서야말로 한 사회의 법치국가적 수준을 높인다. 그게 선진국 법치 시위문화의 국제 표준인 시장경제적 법치이다.                                           kkkang@s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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